창작 :: 2009. 11. 23. 21:34

 할매. 아부진 어디 갔노? 할매는 대답대신 손에 든 누런 손수건을 꽈악 쥐며 밥이나 무그라, 하곤 마루끝에 가 앉았다. 밥상엔 멀건 죽과 바닥에 바른 듯이 간장이 묻어있는 종지가 올라왔다. 오늘은 밥풀이 많다, 할매! 그래, 많이 무라. 할매. 근데 울 아부지 어디 갔노. 할매는 캐묻는 날 조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봤다. 그 입막음 할라꼬 밥풀을 이리 많이 줬나. 이미 입에 훌렁훌렁 넘겨버린 뒤에야 찔끔했다.
 니 아부진 저-기 저 귀신나무가 잡아무겄다. 할매의 손끝엔 기백 년은 묵었을 소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. 우리 마을 수호신이라고 농사가 잘 되고 했을 땐 빨강이 파랑이 색색 천으로 옷을 해 주고 덩실덩실 춤도 추었던 그런 나무다. 흉년이 들고 난 뒤로는 천이고 뭐고 다 떼다 팔아먹어버려선 이젠 몸만 덩그레 있다. 할매. 저건 수호나무다. 귀신나무라 안카나. 할매는 카랑카랑하게 소리쳤다. 그라믄, 아부지 물건도 저 나무가 묵었나? 그래. 니 아비 옷이고 신발이고 간에 저 나무가 다 무따. 창고에 있던 호미랑 괭이도 다 저 나무가 묵었나? 우리 먹을라꼬 남겨뒀던 볏섬도 저 나무가 묵었나? 할매는 고개를 돌렸다. 그래. 저 나무가 다 무따. 그래서 귀신나무다.
 그라믄 옆집 가족도 죄다 저 나무가 묵은기가?
대답하는 할매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렸다. 그라믄 다시 돌려달라고 해야제. 나는 벌떡 일어나서 나무를 향해 달렸다. 야야, 어디가노! 할매는 구부정해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따라왔다. 
 나무 앞에 섰다. 시커멓게 말라붙은 것이 정말 괴물같았다. 퍽, 하고 세게 걷어찼다. 내 아부지 내놔라 이 멍청아! 밥팅아! 벼멸구야! 대답은 없고 다 썩은 나뭇잎만 푸스스 떨어진다. 나 산수 가르쳐준다던 옆집 형 내놔라, 가끔 감자 쥐어주던 착한 아지매도 내놔라, 우리 아부지도 내놔라 이 괴물아! 괴물딱지야! 아무리 차도 뭔가 나오는 기색은 없고 나무는 턱턱, 푸스스 하고 괴로운 신음만 내뱉는다. 할매는 나를 다 따라와선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고, 아이고, 저 가엾은 걸 어쩌누, 어쩌누 하고 울었다. 할매, 이 나무가 다 잡아무따 했제. 내가 이렇게 계속 차믄 지깟 놈이 어뜨케 버티겠노. 우지마라 할매. 그래도 할매는 계속 울었다. 같이 때려주긴 커녕 나만 쳐다보고 구슬프게 구슬프게, 사람 죽었을 때 하는 것 같은 곡을 했다.